예전에 회사 직원 가운데 사오정팀이라 불리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 친구들의 문제점은 누군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로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저녁에 회식이 있으니 퇴근시간 전까지 일 정리해놓고 시간되면 다같이 출발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아, 오늘 저녁에 약속있는데 회사에서 야근하면 안되는데..." 이런 걱정을 하는것이다. 저녁의 약속을 지키기 힘들어지는건 마찬가지 고민이지만, 전혀 엉뚱하게 알아들은 이유로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함께 일하고 함께 밥먹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이 친구들 팀원 4명이 다 고만고만했다. 나름대로 팀원들끼리 사이도 좋아서 각자 자기 컴퓨터를 보고 일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는데 가끔 그 친구들 옆에서 오가는 대화를 유심히 듣다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난 주말에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를 봤는데 조승우 너무 멋있더라." "맞아, 맞아, 강혜정 강원도 사투리 쓰는게 너무 귀여웠어" "야, 근데 조승우 강혜정 커플 너무 잘 어울리지 않어?" "맞아, 천생연분이야!" 대충 이런식의 대화가 진행되는것이다. 한사람은 지킬과 하이드를, 한사람은 웰컴투 동막골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대화가 통하는 신기한 친구들이라 사오정팀이란 명칭이외에는 적합한 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요즘들어 사회 곳곳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최근의 아프간 피랍사건에 대응하는 각계의 반응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성의 군복무 가산점과 여성의 군복무, 대체복무, 양심적 병역거부를 통틀어 같이 논쟁한다든가, 경제 성장과 분배에 관한 의견 대립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각분야에서 서로 다른 주제와 견해를 가지고 엉뚱한 틀속에서 같이 토론하고 논쟁하는 기이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나름대로 갖가지 주제가 튀어나오고 온갖 논리와 이론들이 뒤섞여 한바탕 어우러지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복잡한 느낌이 든다. 이 문제의 단점은 도대체가 아무리 토론이 길어져도 결론이 안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주장을 펴는데 결론이 날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론 문화는 인터넷의 발달이후 꽃피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걸음마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는 좀 토론문화에 대한 체계를 잡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발제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중간에 나온 관련 주제는 또 다른 토론의 장을 만들어 논의해 나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경제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가뜩이나 사회의 양극화니, 이익집단의 전성시대니 하는 말들이 횡행하는것도 이런 문제가 저변에 깔려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애초에 결론이 날수 없는 평행선과 같은 주장들만을 하고 있으니, 사회 구성원간의 합일점이나 절충점을 찾는 일은 머나먼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마치 중국음식 짬뽕을 연상케 하는 요즘의 토론들을 보노라면 예전의 그 사오정 팀들이 불현듯 생각날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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